“불의한-종의-지혜-Ⅲ”-(The-Wisdom-of-the-Unjust-Servant)-9.16.수
눅 16: 1-10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3) "The manager said to himself, 'What shall I do now? My master is taking away my job. I'm not strong enough to dig, and I'm ashamed to beg--   ✜ 재물을 다루는 방법(How to Handle Wealth)   청지기는 주인의 재물을 가지고 채무자들의 빚을 탕감해주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야기에 나오는 주인은 그를 책망한 것이 아니라 칭찬을 했습니다. 고소를 당하거나 감옥에 집어넣어야 마땅한데도 말입니다. 주인이 그를 칭찬한 이유는 그가 재물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를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재물은 쌓아두고 혼자 호의호식하거나 자랑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재물을 많이 의지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사실 마음 한 구석에는 재물을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입니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마음을 강력하게 지배합니다. 돈이 힘입니다. 권력입니다. 백화점에 가서 명품을 사면 마치 자기의 삶이 명품의 대열에 올라 선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킵니다. 호텔이나 놀이공원에서 돈을 팍팍 쓰면 굉장히 행복한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소비가 순간적으로 마약과 같은 황홀경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 생활로 돌아오면 달라진 것이 별로 없습니다. 자기의 감성이 충만해진 것도 아니고 인격이 고상해진 것도 아닙니다. 돈의 힘에 의지해서 잠깐 황홀경에 빠졌던 것 뿐입니다. 문제가 생기면 또다시 격렬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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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한-종의-지혜Ⅱ”-(The-Wisdom-of-the-Unjust-Servant)-9.15.화
눅 16: 1-10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1) Jesus told his disciples: "There was a rich man whose manager was accused of wasting his possessions.   ✜ 마지막에 발휘된 지혜(Wisdom displayed at the end)   불의한 청지기가 해고될 위기에 처하자 채무자들을 불러 그들의 빚을 탕감해주었습니다. 이 비유를 들려주시면서 예수께서는 그가 ‘지혜로운 자’라고 칭찬하셨습니다. 여기까지 들으면 아마도 많은 분들이 생각할 것입니다. 바로 “어차피 주인의 것인데 그까짓 정도를 누가 못해?”라는 것입니다. 내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인심이나 쓰는데 그게 무슨 큰 일이냐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그럴 것도 같습니다. 그러나 실제 현실에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렇게 행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습니다. 어차피 잃을 건강입니다. 어차피 가져가지 못할 재산입니다. 조금 있으면 내려와야 할 권력자의 자리입니다. 모든 것의 주인은 따로 있습니다. 인생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선을 행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마지막 순간까지 마치 자기의 것인 양 아까와하고 주어진 재물과 권력을 움켜쥐고 있다가 구차스럽게 밀려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지막까지 자신만 생각하고 이웃의 어려움은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널려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청지기는 “떠날 때를 알고 지혜롭게 처신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 소유와 나눔 사이에서(Between Ownership and Sharing)   정신분석학자 에릭 프롬은 “끝없는 소
  • steph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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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한-종의-지혜”-(The-Wisdom-of-the-Unjust-Servant)-9.14.월
눅 16: 1-10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1) Jesus told his disciples: "There was a rich man whose manager was accused of wasting his possessions.   ✜ 이상한 이야기 (A Strange Story)   로 알려져 있는 본문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이상한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4세기 로마의 황제였던 율리아누스는 주인이 불의한 청지기의 사기 행각을 지혜롭다고 칭찬하는 이 성경 내용을 근거로 "예수의 제자들은 거짓말쟁이이자 도둑들"이라고 강력하게 비판했다고 합니다. 비유 속의 청지기는 주인의 재산을 낭비하다가 해고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러자 주인의 채무자들을 불러 마음대로 그들의 빚을 깎아주었습니다. 밀 100석을 80석으로, 기름 100말을 50말로 수정해준 것입니다. 이것은 로마법 관점에서 볼 때 명백한 문서 위조이며 사기죄입니다. 황제에게는 제국의 세금 체계와 상거래 질서가 중요한데 사회의 근간을 뒤흔드는 ‘불법행위의 미화’라며 크게 실망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에는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는 깊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종종 우리의 상식을 초월하는 더 높은 지혜를 나누어주시기 위해 창조적 파괴를 행하신 적이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사실상 관리자라는 것과 선하신 주인(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하려는 것입니다.   ✜ 청지 기의 깨달음(The Steward's Realization)   본문에 등장하는  불의한 청지기는 주인의 재산을 낭비한 불성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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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동행하다-Ⅴ”-(Walking-with-God)-9.11.금
창5: 21-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24) Enoch walked with God; then he was no more, because God took him away.   ✜동행이 가장 중요합니다(Walking together is the most important thing)   누군가와 동행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그저 같은 자리에 있었다고 해서 동행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백화점이나 놀이공원에 같이 있었다고 해서 성경적 의미의 동행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에녹은 하나님의 뜻을 우선적으로 생각했고 하나님의 마음을 살폈습니다. 그것이 동행의 의미입니다. 하나님도 인간의 마음을 살피시는데 그것은 불쌍해서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의 마음을 살피는 이유는 하나님이 불쌍해서가 아니라 경외감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경외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살피지 않습니다. 교회의 일에서도 가장 중요한 일은 주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머리가 되신 주님의 지체이기 때문에 주님과 동행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주와 동행보다는 사역과 성장이 우선시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사역의 효과, 가성비, 지름길을 먼저 생각하다보면 교회의 본질이 훼손게 마련입니다. 교회의 성장이란 주님과 동행하는 결과로서 자연스럽게 따라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장을 우선시하는 성장제일주의는 오히려 주님의 가르침을 밀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질보다는 양, 작은 자보다는 큰 자, 소수보다는 다수, 약자보다는 강자를 더 우대하고 성공을 지향하여 예수님의 가르침을 외면하는 교회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
  • steph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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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동행하다-Ⅳ”-(Walking-with-God)-9.10.목
창5: 21-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24) Enoch walked with God; then he was no more, because God took him away.   ✜기독교인이 보는 죽음(A Christian Perspective on Death)    할아버지와 손자가 공원 벤치에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갑작스럽게 할아버지가 그만 운명하시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소년의 부모가 “할아버지가 어떻게 되신 거냐?”고 물었습니다. 소년은 대답하기를 할아버지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천사가 와서 할아바지께 “리쳐드, 피곤해 보이는구나. 이제 천국에 가서 편히 쉬려무나.”하고 할아버지를 데려가셨다고 말했습니다. 유명한 컨트리 가수인 자니 캐쉬는 형인 잭 캐쉬를 어린 나이에 잃는 슬픔을 겪었습니다. 목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형 잭 캐쉬는 체격도 건장하고 마음씨도 착한 바른 청년의 전형으로 부모님은 물론 이웃들에게도 사랑받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고를 당하여 병원에 실려갔고 일주일 동안 병상에 누워있었습니다. 그가 숨을 거두기 직전 갑자기 곁에 있던 가족들에게 소리쳤습니다. “엄마, 아빠 천사들이 나를 데리러 왔어요. 저 모습이 보이세요?” 환한 얼굴로 손을 들어 가리키던 잭 캐시는 잠시 후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자니 캐시는 형의 마지막 임종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자니 캐시는 천국을 믿었으며 늘 형을 생각하면서 일반 노래뿐만 아니라 가스펠을 찬양하고 교도소를 방문하며 약자들 편에 서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기독교인들에게 죽음은 두려운 존재가 아니며 영원으로 향하는 계단에 불과한 것입니다.   ✜ 주님과의 동행은 최고
  • steph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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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동행하다-Ⅲ”-(Walking-with-God)-9.9.수
창5: 21-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24) Enoch walked with God; then he was no more, because God took him away.   ✜죄의 댓가를 대신 치르신 예수(Jesus, who paid the price for sin on our behalf)   하나님께서 에녹을 사랑하셨고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여 그를 살아있는 그대로 데려가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경험하는 죽음을 경험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게 되어 있습니다. 이 분명한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죽음의 원인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사람들은 흔히 사람이 죽는 이유를 노화나 질병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전혀 다르게 말씀합니다. 사람이 죽는 근본적 이유는 죄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곧 죄의 값은 사망인 것입니다. 죄에는 댓가가 있습니다. 그것이 죽음입니다. 깊은 슬픔입니다. 그런데 에녹은 죽음과 슬픔을 경험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경험하는 것을 그는 경험하지 않았습니다. 세상 모든 것에는 댓가, 혹은 가격이 있습니다. 가격이 높은 것이 있는가 하면 낮은 것이 있습니다. 건강한 사람은 노동력이 있어서 돈을 주고 데려갑니다. 그러나 병든 사람은 돈을 내야 데려갑니다. 좋은 가구는 돈을 주고 가져갑니다. 그러나 망가진 것은 수거비, 폐기물비를 내야 가져갑니다. 죄인은 댓가를 치러야 합니다. 슬픔과 죽음입니다. 그런데 에녹은 슬픔과 죽음의 댓가를 치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삶이 하나님의 기준에 맞춘 삶,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 하늘나라에서 필요한 것 (Thing
  • stephen
  • 1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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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동행하다Ⅱ”-(Walking-with-God)-9.8.화
창5: 21-24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21) When Enoch had lived 65 years, he became the father of Methuselah.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삶(A Life Walking with Christ)   그리스도인들과 세상사람들과의 근본적 차이는 세계관에 있습니다. 세상사람들은 하나님의 창조를 인정하지 않으며 최후 심판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모두를 받아들입니다. 같은 세상에 살면서 동시에 다른 세계에 속해 있는 것입니다. 또한 기독교인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사는 것입니다. 곧 주님과의 동행입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결코 간과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듯이 기독교인들은 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의 역사를 이루신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추구합니다. 그 방법 중 하나는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고 선교에 가담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출석하는 것만으로 기독교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삶의 원칙을 말씀에서 찾고 선교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는 사람은 진정한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강조하신 것이 이것이기 때문입니다. 제도적인 교회에 속해 있다고 해서 기독교인이라고 말하기엔 불충분합니다. 또한 교회의 근본적인 사명인 선교를 외면하고 있다면 그가 과연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신앙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 창조절 준수가 갖는 의미 (The Significance of Observing the Season of Creation)   신자가 주님과 동행하는 삶의 중요한 또 한 가지 지표는 교회력을 준수하는 것입니다. 교회력은 예수님의 생애 사역을
  • stephen
  • 1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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